언어는 사유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논문을 잘 ‘쓰기’ 어려운 세 가지 이유 1
논문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언어와 사유 둘 다 중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사유와 언어의 관계를 통해 논문을 잘 쓰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사유와 언어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철학적 담론들이 존재합니다. 사유와 언어 각각을 심도 있게 연구한 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은 사유와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든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말해줍니다.
논문을 잘 쓴다는 것은 우선 문법을 잘 지키거나 학술적 글쓰기 원칙에 능통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야 논문이라는 '글'이 기본적으로 형성될 수 있으니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고도의 전문 지식과 엄격한 구성/체계를 갖춰야 하는 논문의 특성상, 정확한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개념을 중심으로 사유를 전개하는 이른바 ‘개념적 사유’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정확한 개념 사용은 실제 글쓰기 단계는 물론 이전의 사유 단계에서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언어는 사유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실제로는 사유와 개념/언어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사유가 먼저 이뤄진 다음 이를 글이라는 언어로 가시화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언어가 곧 글'이라는 사고방식이 그것입니다. 언어=글이란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사유의 후속 단계로 사유와는 별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돼버립니다. 정말 그럴까요?
언어는 사유 이후에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글쓰기 이전에도 언어는 이미 사용되고 있습니다. 글의 형태로 드러나기 이전부터 사유를 표현하는 매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글뿐만 아니라 사유 역시 언어를 매개로 형성·전개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언어는 불투명하고 불명확한 사유를 조금이나마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모호하고 단편적인 사유에 불과할지라도 역시 모호하고 단편적인 언어의 형태를 띤 채로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글로 표현될 경우 모호한 사유는 문법 체계와 최소한의 논리적 맥락을 갖춘 채로 정돈될 수 있습니다. 모호한 언어로 불분명하게 존재하던 사유 조각들이 문법적 틀과 문장 구조를 갖춘 정교화된 형태로 변모하는 것이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유는 글로 표현된 언어를 매개로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습니다. 깊어지고 넓어진 사유는 보다 정교화된 글을 창출하는 토대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언어와 사유는 별개의 것이 아니며, 언어에 힘입어 사유와 글쓰기가 선순환 관계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문제와 사유의 문제는 완전히 다른 것일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부분 논문을 쓰실 계획이거나 이미 쓰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논문 공부와 작성을 하기에도 벅차실 분들에게 언어와 사유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논문을 잘 쓰기 어려운 것은 논문이 글쓰기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유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시키다’라는 간단한 표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시키다’는 이른바 과잉 표현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전환하다’, ‘복원하다’, '강화하다', ‘정당화하다’ 등을 ‘전환시키다’, ‘복원시키다’, '강화시키다', ‘정당화시키다’ 등으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다’를 써야 하는 자리에 ‘시키다’를 쓰는 것은 단순한 문법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만, 사유 차원의 문제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다'보다 강한 표현인 ‘시키다’를 씀으로써 해당 서술어 또는 내용을 강조하거나 주체의 강한 의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논지의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주체의 강한 의지를 통해 근거 부족을 메꾸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과잉 표현(‘시키다’, ‘(-도록/게) 만들다’가 남발되는 이유’ 부분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논문을 잘 쓰기 어려운 세 가지 이유
컨설팅이나 첨삭을 할 때마다 듣는 얘기가 논문 ‘쓰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연구자들이 논문 쓰는 일에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겠지요. 대필이나 표절이 성행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논문을 잘 ‘쓰기’ 어렵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문법적 차원의 어려움, 논문의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어려움, 의미적/내용적 차원의 어려움이 그것입니다. 논문 쓰기의 어려움은 논문을 잘 쓰기 어려운 이유와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언어와 사유가 연결돼 있듯 이 세 가지 어려움 역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
세 줄 요약:
논문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언어와 사유 둘 다 중요하다
언어는 사유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논문을 잘 쓰기 어려운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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