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도 아닌데 왜 번역투로 느껴질까? 2
- 논문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 사례 2
지난 시간에 번역투의 의미와 함께, 논문에서 남발되는 첫 번째 유형과 그 개선/해결 방안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두 번째 유형으로 구/절 차원에서 발생하는 번역투 사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구/절 차원에서도 번역투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영어의 전치사에 대응하는 표현이 형용사구와 부사구를 이끄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영어의 전치사가 우리말에서 직역된 것 같은 표현이 자주 쓰일 때 번역투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치사는 우리말에는 없지만 영어에는 존재하는 품사 중 하나입니다. 전치사는 단독으로는 쓰이지 못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형용사구나 부사구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영어 전치사로는 ‘of’, ‘by’, ‘on/about’, ‘in’, ‘through’ ‘for’, ‘as’, ‘because’ 등이 있습니다.
영어 전치사에 대응하는 우리말 표현?
영어 전치사에 대응하는 우리말 표현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의’, ‘에 의한/의해’, ‘에 대한/대해’, ‘에 있어’, ‘로서’, ‘을 위한/위해’, ‘때문에', '로 인해/인한’, '을 통한/통해' 등이 있습니다. 기원, 대상, 자격, 목표, 이유, 수단 등을 나타내는 이 표현들은 논문에서 지나치게 남발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 결과 영어의 전치사가 이끄는 형용사구나 부사구를 직역한 듯한 부자연스런 표현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그 외 'to '부정사 구문에 대응하는 ‘ㄴ다는 것은 ∼ ㄴ다는 것이다’ 등이 있습니다. ‘ㄴ다는 것’은 일본어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논문 내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에 대한/대해’
여기서는 위의 표현들 가운데 논문 내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에 대한/대해’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에 대한/대해’는 ‘어떠한 것을 대상으로 하다/삼다’, ‘어떠한 것을 상대하다’는 뜻입니다. 유사 표현으로는 ‘에 관한/관해’, ‘에 관련된/관련되어’, ‘에 연관된/연관되어’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해당 주제/내용의 대상적 범위를 명확하게 한정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대상적 범위를 주제/내용에 맞게 명확하게 한정할수록 결과의 오류나 오차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논문에서 ‘에 대한/대해’가 남발되는 이유
문제는 ‘에 대한/대해’가 논문에서 지나치게 많이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논문은 특정 주제나 현상을 학술적인 논증의 ‘대상’으로 다루는 글쓰기 방식입니다. 따라서 대상을 명확하게 지정하거나 한정하는 목적을 지닌 ‘에 대한/대해’와 같은 표현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도시 발전에 관련된 저해 요소에 관해 입지 개선을 위한 정책 개발의 가능성에 대해 분석해보았다.”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문장에는 ‘에 관련된’, ‘에 관해’, ‘에 대해’가 연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문장은 복잡해지고 개념 간 관계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도시 발전, 저해 요소, 입지 개선, 정책 개발 등 핵심 개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에 관련된’, ‘에 관해’, ‘에 대해’……
‘에 관련된’은 ‘저해 요소’의 대상을 ‘도시 발전’으로 한정하는 표현이라면, ‘에 관해’는 '저해 요소'의 대상이 " 개발의 가능성"임을 나타냅니다. ‘에 대해’는 ‘분석해보았다’가 "개발의 가능성"을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중 ‘에 관련된’과 ‘에 대해’는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거나 조금 손보는 방식으로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습니다.
대체나 약간의 수정만으로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다
우선 "도시 발전에 관련된 저해 요소"에서 ‘에 관련된’을 삭제하면 어떻게 될까요?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되도록이면 목적어+서술어와 같은 일반적인 문장 구조로 풀어쓰는 것이 가독성 향상에 좋습니다.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분석해보았다”는 ‘분석해보았다’가 자동사로 쓰이고 있는 표현입니다. ‘분석해보았다’를 타동사로 바꿔보면 위의 표현은 "가능성을 분석해보았다"라는 훨씬 깔끔하고 정돈된 표현으로 변모합니다. 즉 '에 대해'가 '을'로 대체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개념 간 '부적절한' 관계를 그대로 두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다면 문장 중간에 나오는 “에 관해”는 어떨까요? 대체나 약간의 수정만으로도 개선이 가능할까요? 안타깝게도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땜빵’하는 식으로는 이 문장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앞서의 두 표현이 각각 문장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자리하면서 문장 내 일부 내용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에 관해"는 문장 한가운데에 자리하면서 문장의 전체 내용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에 관해”를 수정/대체/삭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개념 간에 존재하는 '부적절한' 관계(비논리성)를 그대로 둔 채 표현만 조금 손보는 방식으로는 이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문맥에 맞는 문장구조로 전면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논문에서 문장을 쓰는 것은 중요한 개념들을 연결하여 의미 가치가 있는 연구 내용/결과를 도출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에 관해”의 경우에는 표현 단위의 수정이 아닌 문장구조 단위의 수정, 개념 간 관련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대체나 삭제 등 조금 손보는 것을 넘어, 개념 간 유기적 관련성이 명확해지도록 문맥에 맞게 문장구조를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논문의 목적은 매끄러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연구 내용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것
위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전면 수정해보겠습니다.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불량한) 입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이 개발되어야 하는지 분석해보았다.” 도시 발전, 저해, 입지, 개선, 정책 개발 등 핵심 개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문장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에 대해’ 같은 표현이 없어도 정책 개발이 입지 환경 개선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또 분석은 정책 개발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잘못 쓰인 표현을 개선하는 것은 해당 표현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올바른 문장구조 속에서 담아내는 일, 개념 간 관련성을 명확하게 밝혀 가치 있는 의미 정보를 도출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논문은 그럴듯하고 매끄러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연구 내용/결과를 정확하게 담아내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이상으로 번역투의 두 번째 유형과 그 개선/해결 방안을 알아봤습니다. 수동태와 복문을 비롯한 번역투의 세 번째 유형과 그 개선/해결 방안은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고, 다음 시간에는 연구 대상을 정하는 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세 줄 요약:
‘에 대해/대한’은 구/절 차원에서 발생하는 번역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상을 명확하게 한정해야 하는 논문의 속성상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단순 수정을 넘어 개념 간 관련성을 고려해 전면 수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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