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 작성에서 단락 전개 방식으로 표현 방식을 달리해서 화제문의 내용을 되풀이하기, 비교와 대조를 통해 견주어 말하기, 상세한 내용을 덧붙이기, 적절한 실례를 들어주기, 원인을 따지거나 결과를 예측하기 등을 들 수 있다.
오늘 살필 내용은 상세한 내용을 덧붙이기이다. 화제문이 일반적이거나 추상적일 경우 거기에 따르는 설명을 보다 자세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커다란 덩어리만 제시하고, 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차근차근 밝히는 것이 상세한 내용 덧붙이기라고 할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을 덧붙여서 하나의 단락을 구성하는 경우는 대개 화제문이 단락의 첫머리에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이미 제시한 화제문에 대한 부연(敷衍)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무신집권기 이규보의 역할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글을 보도록 한다.
무신집권기에 와서 문신들의 대부분이 무신란 이전을 회고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었으나, 이규보와 같이 무신집권기의 사회 모순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문신집권기의 사회 모순까지 인식하고 오도되어 왔던 문화 경향에 대하여 반성하는 파도 있었다. 이규보는 고구려 후계 정신의 전통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아니라 그 이전의 『구삼국사』를 검토하고 <동명왕편>을 지었다. 이러한 반성은 문학이나 사학에만 그치지 않고 불교 선종에서는 지눌, 교종에서는 각훈 등의 사상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 당시 사회의 모순을 청산할 수 있는 정신적 기준을 찾기 위하여 과거의 전통을 재인식하려는 경향이 문화 전면에서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따라서 이규보가 그의 <동명왕편>에서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 공자의 입장에 서서 유교와 같은 인식 방법으로서도 고구려 전통의 가치를 재인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그때까지의 그들 자신의 문화 체질을 반성하면서 한 족벌의식이나 한 왕조적 의식도 아니고, 그것들을 초월한 민족적 역사의식으로 돌아간 것은 당시 문화 각 분야에서 광범하게 일어난 반성의 소산이지 결코 개인적 취향이나 문학 분야에서만의 경향에 그침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문화에 대한 신뢰와, 그 신뢰에 입각한 비판의식이 새로운 사회․문화 방향의 제시와 국가제도의 재정비라는 열매를 맺기 전에 몽고의 침입을 받아 그 식민지적 위치로 전락하여, 고려 문화는 혼란이 아니라 전전인 해체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한 상황에 타협하든지 타협하기 위하여 고민하는 역사의식은 이승휴․민지․이제현 등의 저술에 나타나고 있으나, 한편으로 이규보 사관의 계통을 이었다고 보이는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불교 중심의 전통 의식을 끈질기게 유지하면서 한국고대사의 보다 바른 인식 체계를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흔히들 『삼국유사』는 불교 중심의 역사 설화집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박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각 시대의 문화 조류들을 여러 차례 거쳐 보내는 동안에 많은 역사 경험을 하고 난 전통문화의 체질이, 자기 기준에서 걸러낸 다음 남는 문화 가치들을 재수집한 것이 『삼국유사』이므로 그 역사의식의 수준은 외화만 일삼은 『삼국사기』보다 오히려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김철준, 『한국문화사론』, 지식산업사, 1976, 145~146면)
이 단락은 무신집권기 이후 무신집권기의 모순뿐만 아니라 그 이전 문신집권기의 모순까지 반성하는 입장에서 과거의 전통을 재인식하면서 <동명왕편>을 지은 이규보의 위상을 화제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역사, 문학, 종교 등의 전 분야에 걸쳐서 살피면서, 이규보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삼국유사』의 의의까지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규보의 중요한 위상은 한 개인의 취향이나 경향이라기보다 당시 문화의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던 반성의 소산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단락은 결국 화제문에 상세한 내용을 덧붙이기에 그치지 않고 처음 화제문이 다음 화제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까지 열어놓고 있어서, 단락 전개에서 매우 유용한 방법을 보이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단락으로 『삼국유사』의 역사의식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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