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 작성에서 단락 전개 방식으로 표현 방식을 달리해서 화제문의 내용을 되풀이하기, 비교와 대조를 통해 견주어 말하기, 상세한 내용을 덧붙이기, 적절한 실례를 들어주기, 원인을 따지거나 결과를 예측하기 등을 들 수 있다.
단락의 전개에서 적절한 실례 들기는 구체적인 사례나 통계자료를 예시하여 주장을 분명하게 하거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도록 논거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때 여러 개의 사례를 나열하여 거기에서 공통점을 추출하여 화제문의 논지를 분명하게 하거나, 각각의 사안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을 제시하여 변화의 추이를 짐작하게 할 수도 있다. 적절한 실례를 들어주기는 화제문의 내용을 가장 뚜렷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제시하는 자료와 사례가 얼마나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냐에 따라 그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예시하는 자료가 글의 방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때에 그야말로 적절한 실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18세기 서울의 경강(京江) 지역에서 마포가 상품 유통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었던 사정을 사례를 통하여 밝히고 있는 단락이다. 서울의 공간 구성을 도성의 안과 밖으로 나누고, 도성 바깥을 연강 지역과 산저 지역으로 구분한 뒤에, 연강 지역에서 경강 지역의 중심지로 마포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경강은 18세기 이전에는 삼강으로 불렸지만, 18세기 중엽에는 삼강 외에 마포, 망원정을 포함한 오강으로, 그리고 18세기 후반에는 여기에 두모포, 서빙고, 뚝섬이 추가되어 팔강으로 불리었다. 팔강으로 불리던 경강 지역은 19세기 초 포도청의 순라 구역을 중심으로 12강으로 구분되고 있었다. 연강 지역은 한강, 두모포, 뚝섬, 왕십리, 안암, 전농, 서빙고, 용산, 마포, 서강, 망원정, 연서의 12구역으로 다시 구분되었다.
경강 지역의 중심지는 마포였다. 서강과 용산이 세곡 운송의 중심지라면 마포는 상품 유통의 중심지였다. 그러므로 마포에는 경강 포구 중에 가장 많은 시전이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확인되는 시전(市廛)은 마포염전(麻浦鹽廛), 마포미전(麻浦米廛), 마포칠목전(麻浦漆木廛), 마포잡물전(麻浦雜物廛), 마포간수전(麻浦艮水廛), 토정고초전(土亭藁草廛), 토정시목전(土亭柴木廛)과 마포염해전(麻浦鹽醢廛) 등이다. 또한 마포는 마포삼주(麻浦三主)라 하여 객주(客主), 당주(堂主), 색주(色主)로 유명했다. 뱃사람이 드나들기 때문에 상품 거래를 주선하는 객주가 번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당집들도 뱃길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는 데 동원되었다. 또한 마포는 유흥가로서도 매우 흥청거리는 곳이었다. 이곳에 설치된 술집이 600-700여 곳이었고, 여기서 술 제조에 소비되는 미곡만도 1년에 수만 석을 넘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이른바 포구에서 매음을 일삼는 색주가들도 마포를 중심으로 번창하게 된 것이다. 마포를 중심으로 한 연강(沿江) 지역은 상업 중심지로서만이 아니라 유흥가로서의 모습도 띠고 있었던 것이다. (고동환, 『조선시대 서울도시사』(태학사, 2007), 389면)
이 글은 조선후기 서울의 공간 구성을 살피는 과정에서 도성 바깥 지역을 연강(沿江)과 산저(山底) 지역으로 구분하고, 연강 지역을 서울을 감싸고 흐르는 경강(京江) 주변 지역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 경강은 18세기 이전에 한강, 용산강, 서강을 지칭하는 삼강(三江)으로 불리다가, 18세기 중엽에는 마포, 망원정을 포함하여 오강(五江)으로 불렸으며, 18세기 후반에는 두모포, 서빙고, 뚝섬까지 포함하여 팔강(八江)으로 불리었다. 그 가운데 위에 인용한 중심 단락은 경강의 중심가 마포였다는 점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소금을 파는 마포염전을 비롯하여 쌀, 칠목, 잡물, 간수, 마른풀, 땔나무, 젓갈 등을 파는 시전이 마포에 늘어서 있었고, 상품 거래를 주선하는 객주, 뱃길의 안녕을 비는 당주, 유흥가로서 색주가 이곳에 있어서 상업 중심지로서 뿐만 아니라 유흥가의 모습까지 띠고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각 시전(市廛)의 배치 자료, 객주, 당주, 색주의 자료를 바탕으로 적절한 실례를 들면서 논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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